아미타불상은 고려에서도 서방정토왕생(西方淨土往生)을 위하여 많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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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을 봉안하고 90일을 1기(期)로 삼아 삼업(三業, 몸 입 마음으로 짓는 행동 말 생각)의 수행을 통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했던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에서부터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20년간 아미타불을 염불한 이씨(李氏) 부인(1305~1380)에 이르기까지 고려 전 시대에 걸쳐 아미타불상은 개인적인 염불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아미타불상은 정토왕생신앙을 실천하고자 했던 불교 결사(結社, 뜻을 같이하는 승려와 신도들이 모여 불교를 개혁하려는 모임)에서도 염불의 대상이 되었다.

1092년(선종 9)에 만일(萬日) 결사를 주도한 인예태후(仁睿太后, ?~1092)는 견불사(見佛寺)에서 아들 의천을 통해 알게 된 천태종의 예참법(禮懺法)을 1만일 동안을 실천하였는데, 이 예참법은 법화삼매참회(法華三昧懺悔, <법화경>과 <관보현보살행법경觀普賢菩薩行法經>을 근거로 죄업을 참회하는 수행법)를 수행하고 아미타불을 예불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것이었다.

법상종의 승려 진억(津億)은 1123년(인종 1)부터 1129년(인종 7) 사이에 폐허였던 지리산(智異山) 오대사(五臺寺)에서 서방정토왕생을 목표로 하여 수정(水精) 결사를 주도하였는데, 이 때 승려 법연(法延)은 무량수불상(아미타불상)을 조성하여 금당에 봉안하였다.

수정 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15일마다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에 따라 나무 간자(簡子)를 던져 자신의 수행 과보(果報, 인과응보)를 확인하고 악보(惡報, 나쁜 과보)가 나오면 서방정토에 왕생하기 위하여 참회 수행하였다.